문학

유물이 된 다리

트래블노마드 2017. 10. 17. 15:20

유물이 된 다리

고운 최치선



(1)
그녀에게 가는 길은 구시대의 유물처럼 남루한 빛으로 얼룩져 있었다

직선으로 쭉 뻗은 길을 기대했지만 눈 앞에 펼쳐진 미로는 출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어지러웠다

길 양 옆으로 어김없이 나타나는 바다는 그녀의 양 갈래 긴 머리처럼 좌우로 정확히 나누어져 흩날렸다

길은 비가 되고 안개가 되고 마침내 바다가 되어 버린다

규정속도를 넘겨 질주하던 차는
도로 위에서 비상할 준비를 마치고 그녀는 이미 사라져
더 이상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을왕리 바닷가에서 안개에 둘러 쌓인 바다를 보았다
바다는 하늘을 닮는다
잿빛하늘 잿빛바다 멀리서 출렁이는 파도
그 위에 떠 있는 낚싯배도 낚시꾼도 잿빛이다
그녀의 눈에는 내가 무슨 색으로 보일까?

(2)
영종도에서 도시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름없는 발자국들이 찍혀 있었다
미아가 되어버린 발자국들을 다시 밟으며 서울로 향한다
영종도와 서울을 잇는 다리를 지날 때
사라진 그녀의 모습이 나타나자
액셀러레이터에 힘이 들어간다

영종도에 다리가 생기기 전과
다리가 생긴 후는 어떻게 다른가
인간이 만든 다리와 자연이 만든 다리는
평행선처럼 영원히 일치하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을 잇는 다리는
지상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그녀와 나를 잇는 다리도
오래전 박물관의 유물이 되었다